외국어는 여기에

EBS 방송 녹음

프리온라인 2011. 5. 19. 01:43

2011년 5월 16일 월요일 날씨 : 짱 좋아

 

" 실장님. 월요일날 오후 반차를 좀 쓰겠습니다. "

" 왜? "

" 라디오 방송 녹음하러 교육방송에 갑니다. "

" 뭐??????  니가, 왜? "

" 아 뭐 대단한 건 아니고,,,, 일본 노래를 부르러요. "

" 뭐? 일본 노래???? "

 

지난 주 금요일, 퇴근을 앞두고 다들 기분이 좋아있는 상황을 틈타 저는 실장님께 휴가결재를 들이 밀었죠.

실장님, 과장님, 계장님 등등 주위 모든 선배들의 표정에는 약간은 황당한 표정이 역력했지요.

'얘가 일본어를 한다고 하는 것 같긴 했지만, 교육방송국에까지???' 이런 표정이랄까요.

고개를 갸우뚱 하시는 분도 계시고, 당장 그 자리에서 노래를 불러보라는 분도 계셨어요. 무반주로요.

가사를 외우지는 못했다, 라디오 방송이니 가사를 보면서 노래를 부른다며 겸손을 떨어주었죠.

반주없이 노래를 부르는 것도 민망한데, 일본어 한 글자도 모르는 사람 앞에서 일본 노래라니요.

 

" 알았어. 뭐, 하루 휴가 내지 왜? "

" 아뇨. 월요일 오전에는 할 일도 많고, 반차로도 충분합니다. "

 

들뜬 마음으로 오늘이 되었습니다. 옷도 입고 신경써서 머리도 하고 (어느 그룹의 노래 가사인가요?)

함께 가기로 한 강복동 상과 회사 근처 충무로역에서 만나 양재동으로 출발했습니다.

 

우리가 향하는 곳은 놀랍게도 우면동 EBS방송센터입니다. 일본어를 EBS방송으로 배운 게 

1993년부터이고, 라디오 방송을 듣기 시작한 건, 1995년 일본어강좌 방송부터였네요.

그 당시는 TV는 세종대 이응수 교수님, 라디오는 한국외대 이인영 교수님께서 방송을 진행하셨어요.

약간은 졸립다고 해야 할까... 차분한 방송 일색이던 시절이었죠.

20년 가까이 되는 저 만의 추억 속의 EBS방송국을 직접 가보게 되다니 꿈만 같네요.

게다가 오늘, 라디오 부스에 들어가서 내가 직접 노래를 부른다니 믿어지나요?

나의 일생에 어마어마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웬걸... 핸드폰을 두고 왔네요. 이럴 때는 이렇게 외쳐야 속이 좀 시원하죠.

'젠장!' (칙쇼!)

 

오늘은 저만 방송국을 찾는 건 아니고, 저 말고 청취자가 여섯 명이나 더 있어요.

최근에 교육방송에서는 사상 최초로 일본 가요를 가르쳐 주는데요, 원곡이 공중파를 타면 법률위반이라서

특별히 센세가 직접 노래를 부르고, PD도 노래를 부르고, 옆 방송 센세도 노래를 부르고 난리가 났어요.

방송이 가라오케가 되려나봐요. 그런데 좀더 재미있게 해보자는 취지로 청취자의 목소리를 빌려본다고 하네요.

덜커덕 신청은 했지요. 그러다가 얼레 당첨(?)이 되었어요.

카페 골수 회원 4명이 모두 당첨이 되었어요. 그리고 2주 정도 연습을 했군요.

<나는 가수다>처럼 독창은 아니고, 여러 사람이 부르는 거거든요.

보통 노래 한 곡 중에서 세 단락 정도를 부르는데, 어차피 한 소절 정도 부르면 끝이에요.

한 소절은 시간으로는 10초가 좀 안 되죠.

 

10초를 위해서 우면동으로 가는 것은 아닙니다.

원 센세와 겐코 센세의 환상적인 궁합을 체험하러 갑니다. 물론 갑자기 등장하셔서는

누구보다도 혈기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EBS 이 PD님을 실제로 봐야겠다는 마음도 있어요.

저는 너무 설렙니다.

 

양재역에서 카페 골수 회원 4명이 만났어요. 거기에 야사시한 김현희 상도 함께요.

2대의 택시에 나눠 타고 우면동으로 갑니다. 어째 점점 구석진 동네로 들어가는 기분이네요.

아파트 단지 일색이고, 나무는 왜또 저렇게 울창한지...

 

" 사- 츠이탓! "  

 

도착했더니 약간 오래된 듯한 정문에 EBS방송센터, 한국교육개발원(KEDI) 현판이 떡하니 걸려있네요.

여기가 그곳이구나... 두리번거리는 우리를 이 PD님이 저쪽 위에서 부릅니다.

 

" 중급일본어.. 오셨나요? "  

 

아... 파란 파라솔이 하나둘 줄지어 있는 쉼터가 2층에 있네요. 계단을 따라 올라가 봅니다.

겐코 센세!!! 사진보다 훨씬 멋진 자태를 뽐내며, 방송에서 들었던 '흐흐흐' 웃음 소리가 그대로 담긴

착한 얼굴로 저희를 맞이해 주시네요. (게다가 우리말을 어찌나 잘하시는지...ㅋ)

스승의날을 기념해 카페에서 준비한 '프레젠-토' 증정식을 짧게 갖고선 인사를 나눴습니다.

아 먼저 오신 서은영 님도 계셨네요. 반갑습니다.

 

가볍게들 인사를 나누고, 난데 없는 야외 리허설? 역시 모든 키(key)는 이 PD님 손에서 쥐락펴락.

아이폰 반주에 맞춰 남성 먼저 음질(?) 테스트 들어가네요.

이 PD님의 눈빛이 <위대한 탄생> 방시혁 저리가랍니다.

약간 부끄러운 듯 노래를 불렀는데, 반응이 나쁘지는 않네요. 목소리를 좀더 크게 내면 좋겠답니다.

사실 저희는 어린이날 미리 만나 한강나루에 앉아 연습을 했었는데, 효과가 있었나봅니다. 뿌듯...

 

" 오.. 괜찮은데요? 네 분이 다같이 합창하시면 될 것 같아요. " 

 

PD님의 호평!

근데... 다같이 합창을 하라고??? 각자 한 소절씩 부르는 게 아니라?????

뭐야... 합창을 하면 목소리가 묻히잖아...... -_-;; 에... 기껏 자랑하고 왔더니만!!

그런데 평소와 달리 2분 넘게 노래를 부르라는 거예요. 이건 세 소절이 아니라 거의 전곡 수준이에요.

히야...

 

이어서 여성분들의 음질테스트.

우리 남성들이야 미리 알고 지내기도 했고, 나름 리허설을 했지만

여성 세 분은 서로 초면이었는데도 한 방에 뿅가는 노래 실력.... 우와우와.

PD님의 입가에 방긋. 두 분 선생님들께서도 만족스런 모습입니다. 신이 나네요.

 

" 자, 그럼 스튜디오로 들어가시죠. 노래 녹음 먼저 하시고, 방송 1회 분량은 일부러 남겨뒀습니다. " 

 

와... 견학까지 할 수 있게 6일 방송치 중에서 하루치는 남겨두었답니다. 이 PD님 센스쟁이!!

드디어 스튜디오 입성.

사진을 보시면 더 잘 느끼실 수 있으려나... 약간 비좁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부스입니다.

통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엔지니어실과 녹음실이 구분되어 있고,

유리창 위 아래에는 시뻘건 글자의 전자시계가, 보는 사람의 마음을 더욱 긴장되게 하네요.

움찔!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신기해 하는 일곱 청취자가 정신 못 차리를 사이 엔지니어 선생님 입장~!

앗... 상상 초월. 자그마한 체구의 여성분이네요... 그러나 뽀스가 느껴집니다.

사람이 어째 웃지도 않아요. 웃음기 싹 뺀 건조한 표정입니다. 난 그런 사람 싫은데~~

어째 우리 늠름한(?) 이 PD님도 엔지니어 선생님에게는 약간 쪼그라드는 느낌이에요.

 

방송 녹음이란 게, 그냥 마구 진행하는 건 아니네요.

각자의 성량을 미리미리 테스트하고, 방송에 적합한 음량이 되도록 요래저래 올렸다 내렸다 하는

스위치 같은 걸로 음량을 조절하네요. 근데 여전히 엔지니어 선생님은 얼굴이 건조해요. 기분 나쁘게.

그런데 어쩌면 평소에 딱 네 명이서 녹음을 진행할 때보다, 구경꾼들이 배 이상 많아졌으니

엔지니어 선생님에게는 우리가 방해꾼들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우리는 뒤에서 수근수근, 은근히 신경 쓰이게 떠들었거든요. 입을 다물어야지 싶다가도

눈앞에 펼쳐지는 장면장면에 나도 모르게 환호와 탄성으로 연결되고, 옆에 있는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파 자꾸 입이 근질거렸다니까요.

 

방송 녹음이 시작되었습니다.

다들 이런 건 처음이라 어리둥절 표정들이 볼 만하네요.

'보이는 라디오'였다면 아주 가~~~관이었을 겁니다.

 

 

실제 방송 녹음은 아주 순조롭게 진행된 것 같아요. NG 없이 한 방에 OK 사인이 떨어졌거든요.

여성분들의 5월 3주차 노래 <靑い傘>, 남성들의 5월 4주차 노래 <3人の写真>까지 멋졌습니다.

실제로 방송을 듣게 된다면 정말 오줌을 지릴 정도로 감동이 밀려올 것 같아요. 아~~ 표현 쥑인다!

노래를 다 부르고 라디오 부스를 나와서도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게,

너무너무 과분하고 정말정말 즐거운 추억으로 길이길이 남을 것 같습니다.

 

아참. 실제 방송 녹음 현장도 이어졌습니다.

하루치 20분 방송을 실제 눈앞에 보고 있자니, 엔지니어실에서 녹음실을 향해 하트뿅뿅 날리고 싶어지고,

모처럼 방문한 팬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자꾸자꾸 NG 내주시는

겐코 센세에게 화이토!!! 

 

 

후기가 너무 길었네요.

우리는 현관에서 단체사진도 한 방 멋드러지게 찍어주고, 

미리 준비했더니 다 식어빠진 피자 두 판과 이 PD님이 준비하신 음료와 과자를 놓고,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게 즐거운 한 때를 보냈습니다. 쌀쌀해지지만 않았더라면

밤을 새고도 남을 지경이었다니까요.

 

끝으로

졸지에 군대에 다시 가야될 것 같았던 뒤태미남 태경상과,

초면부터 서울지부장을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 달려드는 흔치 않은 캐릭터 임*애 님...

아줌마 감성으로 쫙쫙- 분위기에 흡수된 20대이고 싶은 30대 서은영 님.

오빠들을 F4라 칭했다가 일순간 모두에게 (특히 임*애 님에게) 외계인 취급을 받았던 김현희 상.

오늘따라 거만하게 분위기만 잡고 앉아 있던 부산 싸나이 김재홍 상.

몸 상태도 좋지 않은데, 함께 참석해 자리를 빛내주었던 우리 강복동 상.

일찍 자리를 떠야 해서 무척이나 아쉬웠던 너무 잘생겨서 약간 샘났던 숯검댕이 눈썹 겐코 센세!!

그리고 우리의 영원한 멘토! 아름다움의 극치!!! (아... 좀 심했나? ㅋ 심했다면 항의글 올려주세요.)

원미령 센세!!

이 모든 자리를 마련하느라 고생깨나 하셨을 법한 은근 4차원 소녀 이 PD님까지!!

모두모두 반가웠습니다. 다음 정모가 있을 때 꼭~~~ 나와주세요.

 

이상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후기를 모두 마칩니다.

핸드폰을 두고 나와서 사진이 없어요. 은근히 제가 찍은 움짤 사진 기대하셨던 분들께는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v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