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여기에

우연... 인연???

프리온라인 2006. 9. 12. 01:55

정규퇴근 시간 40분 후...

 

'20분 남았다.'

 

어제 저녁 10시까지 야근을 했던 나로서는 오늘 왠지 보상심리가 발동했다.

수요일은 축구회, 목요일은 농구회, 금요일은 다시 야근 또는 술자리.

토요일은 선배 교직원의 결혼식. 오늘은 꼭 내 시간을 가져야지 다짐했다.

그래서 약속도 잡아 놨었다. 분명 과장님은 오늘 약속이 있다 하셨다.

 

"자, 한잔 하러 갈까. 다.. 정리하자."

 

엥? 아니... 약속 있으시다니 이게 웬 날벼락?? 과장님의 한 마디는

어깨로 전화를 받고 있던 나를 쓰러뜨릴 정도로 대단한 위력이었다.

전화기 속의 업체 관계자의 말은 더이상 내 귀에 들리지가 않았다.

 

"저.... 저..... 저......"

 

결국 도살장에 끌려가는 분위기에서 나는 시간을 조금이나마 벌었다.

잠깐 어디 들렀다 가겠다는 걸로 분위기를 달래놓은 것이다.

친구 양복 맞추러 가는 데 따라가기로 했다는 이유도 참 우습긴 하지만,

과장님 술약속 자리에 따라가는 게 얼마나 싫으면 그랬을까...

 

그런데 실제로 이래저래 시간을 많이 지체하게 되었다. 지하철에서 내려서

서울역 4번 출구를 찾아 나가는 데만 20분은 걸린 것 같다. 엄청 걸었다.

양복 원단 고르고, 치수 재고, 옷 몇 번 갈아입고... 자꾸자꾸 시간이 가는 게

무서웠다. 여기서 친구랑 헤어지면 나는 가야하니까. 나는 옥수동 가야하니까.

 

"잘 가라."

 

헤어지고 잠깐 동대문운동장에 들렀다. 내일 축구회에 나가서 신을 축구화를

살까 해서였다. 그런데 밤이 되어서 매장 문은 거의 닫혔고, 몇 군데 열려 있었지만

도무지 쇼핑을 하겠다는 마음이 생기지가 않았다. 옥수동, 옥수동... 내 머릿속에는

온통 옥수동뿐이었다.

 

이런 마음이 그대로 표현된 걸까. 지하철이 가장 빠르다는 걸 알면서도 버스를 탔다.

버스에 옥수동이란 글자만 보고 말이다... 동대문, 신당동... 버스는 꽉 막힌 도로에서

시간을 계속 지체했다. 그러더니 결국 내가 돌았다. 버스는 옥수동으로 잘 가는데,

나는 약수동 이정표를 보고, 순간 착각을 한 것이다. 버스가 자꾸 산골짜기로 가는 거

같아서 그만...

 

'어라. 나 약수동 쪽으로 가야 되는데... -_-a'

 

버스에서 내렸다. 그리고 반대로 걸었다. 안되겠다 싶어 지하철을 탔다. 신금호역.

지하철 개찰구를 통과하고보니 내가 가야하는 곳이 약수동이 아니라 옥수동인 것을

알았다. 5호선에서 6호선으로, 다시 3호선으로 갈아타며 옥수역에 겨겨우 도착했다.

과장님과 사무실에서 헤어지고 3시간 반이 흐른 시각이었다. 과장님과 함께 있을

김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저 옥수역... 옥수동..?? 여기 왔는데, 어디로 가야.......엥?????"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네? 해산??? 다 집에 가신 겁니까??????? "

 

다들 집에 간 거다. 내가 너무 늦게 도착한 거다. 옥수동에는 내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던 거다. 우우우우우우우우웅.... 이런이런이런이런.

술을 마시지 않아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았지만, 헛고생을 했다는 점과

내일 아침에 과장님한테 뭐라고 하나 걱정이 한 무데기로 몰려들었다.

집에 올 때는 국철, 4호선, 2호선을 탔다. 우와. 오늘 1호선부터 6호선까지 다 탔네. ㅎ

 

아참! 여기서 잠깐.

사실 위 이야기는 오늘 주제의 주변이야기일 뿐이다.

주제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부터다.

 

내가 금호2가동을 헤매며 걷다 찾아들어간 신금호역에서였다.

귀에는 이어폰에서 일본어 방송이 흘러나오고, 주변 상황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잰걸음으로 지하철을 타러 가는데, 누군가 어깨를 툭 치는 게 아닌가.

저쪽 편에서는 나를 알아보고 어깨를 툭 쳤고, 나는 바삐 걷고 있었으니

둘의 위치는 순식간에 반대가 되었다.

 

" 어? "

" 안녕하세요!? ^^* "

" (어! 그녀다!!) 어! 안녕하세요!! "

" 여기 사세요? "

" (우와. 여기서 만나네.) 아뇨... 저 지금 길 헤매고 있거든요. 옥수동 가야되는데... "

" 아.. 지하철 타세요. "

" (지하철 타러 가잖냐.) 집이 여기 근처이신가보죠? "

" 네.. 신금호요. 집이 어디신데요? "

" 아... 저요? 전, 독산동이오.. 멀죠. 안녕히 가세요. "

" 네. 안녕히 가세요. "

 

그냥 인사였다. 그런데도 참 반가웠다. 마음이 동하다가도 멈추고 동하다가도 멈추고

계속 이렇게 가다가는 그냥 멈추겠거니 생각했는데, 꼭 이런 우연이 생긴다.

또 어떤 말을 전했어야 하는 걸까. 예전에도 이랬던 적이 있는데.. 그것도 두 번이나.

그 때도 그냥 우연을 우연으로 끝내고 말았던 기억이 난다.

오늘의 우연도 인연이었으면 생각하는 걸 보면, 좋아하기는 좋아하나 보다.

이런 것이 좋아하는 감정일까. 자꾸 우연이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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