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는 여기에

ⓙ J와의 추억

프리온라인 2006. 8. 25. 08:46
J.. 스치는 바람에.. J 그대모습 떠올라...

그 J가 아니다. -_-


난 초등학생 때부터 용산전자상가를 부쩍이나 자주 들락거렸다.
집에서 124번 버스를 타면, 한 번에 갈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놈의 오락기(일명 패밀리게임기)가 툭하면 고장났기 때문이다.
납땜을 하는 법을 익힌 것도 그 때였다.


패밀리게임기...

TV에 연결해 놓고, 팩을 꽂으면 오락이 된다. 4번을 틀어야 한다.
그런데 화면 가득 수놓은 글자는 다름아닌 일본말.
화면에 다다다닥 거리면서 표시되는 일본말을
그냥 무늬 보듯 했다. 오락은 대충 이해하기로 하고 말이다.
친구들도 마찬가지였음은 자명한 사실...


중학교 1학년이던가... 1993년이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된 누나가
숙제랍시고 갖고와서 공책에 끄적거리고 있던 것이 바로
지금은 한글 쓰듯 하는 "히라가나" 였다.
누나는 '제2외국어'라는 특이한 교과목으로 일본어로 택한 것.
프랑스어랑 일본어 중에서 일본어를 선택했다고 한다.


나는 누나의 고등학교 일본어 교과서 첫 페이지를 보며
혼자 일본어를 그려보기 시작했다. 누나의 도움도 받았다.
그렇지만 영어 알파벳보다 더 말려들어가는 '히라가나'보다는
한글 자모처럼 생긴 '가타카나'라는 글자를 외우려고 했다.



그 책을 펴 놓고,
패밀리 게임기에 나오는 글자를 읽어보려 했지만,
자막이 너무 빨리 지나가서 대조해 읽는 것은 곧 포기했다.
그리고 누나 대신 EBS 교육방송을 이용하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생각은 정말 탁월했던 것 같다.


1993년 EBS-TV 방송편성표에서
월~목 저녁 9시 25분부터 50분까지
이응수 세종대학교 교수께서 일본어회화를 진행하고 있었다.
나는 5월부터 교재를 구입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_- 문제가 생겼다.

식구들이, 특히 형아의 원성을 높게 산 것이다.
하필 그 시간이 중요 시간대였으므로,
형아는 보고 싶은 TV를 못 보게 된 거였다. 특히 드라마.. -_-
채널다툼을 한다면 당연히 형아가 이기겠지만,
동생이 공부를 하겠다는데 채널을 돌릴 형이 어디있겠는가.


결국 우리집에는 TV가 한 대 더 생기게 되었고,
14인치 작은 TV는 형과 내가 쓰는 작은 방에 들어가게 됐다.


" 야야... 들어가서 봐. "


나는 방에서 혼자 TV를 즐겼다.
매년 EBS TV (최근에는 라디오까지) 모니터했지만,
그 때만큼 재미있었던 일본어회화는 없던 것 같다.
(월-화-수 내용이 이어지는 시리즈물에, 목요일은 복습 시간..)




중학교 때 친구들은 나에게 이런 소리를 곧잘 했었다.


"야, 일본어는 서울대에서 안 봐. 뭐하러 공부하냐."

" ??? "


그런데 나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도 몰랐다. -_-;;
다음해에도 계속해서 EBS-TV 일본어회화
교재를 사모았다. 중학교 3학년 때는 정기구독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다른 외국어... 특히 중국어의 기세에 밀려
일본어는 매주 월, 화에만 방송을 하게 되는 압박을 당하게 되어,

나는 1995년부터 라디오 일본어강좌에도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라디오는 월화수목금토... 일주일 내내 방송을 편성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이제는 돈을 필요없었다.
교재를 안 사고 그냥그냥 즐겼다.
대신 일본어 월간 학습지에 눈독을 들였지만,
내용이 너무 어려워서 그만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