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여기에

오랜만에 쓰는 글

프리온라인 2006. 5. 26. 01:58

학교에서 소모임 활동을 하나 했었다.

정말 열과 성을 다해서 활동하고, 졸업하면 언제쯤 다시 찾게 될까 생각했다.

그런데 학교에 취직을 하게 되고, 후배들에게 조금씩 신경을 쓰게 됐다.

 

그런데 한 후배와 마찰이 생기게 되었다.

내가 봤을 때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있었다.

선배들의 평은 그다지 좋지 않고,

후배들 사이에서는

추종자와 안티가 확연히 구분이 되는 양상이다.

 

그런데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는데,

탈퇴를 하겠노라고 홈페이지에 거창한 글을 남겼었다.

몇 후배가 말렸던 모양이었는지, 떠나는 자신을 잡지 말길 바란다고 했다.

도대체 무슨 사건이 있었던 것일까 궁금했지만,

이미 홈페이지에서는 탈퇴를 한 상태였다.

오밤중에 전화까지 해서 물어보고 싶지는 않았고,

그냥 쪽지나 한 편 보내려고 했었는데...

 

회장에게 물어봐야겠다 싶어, 회장에게 쪽지를 보내어 

MSN 친구 등록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날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고 며칠이 지났다.

 

난데없이 홈페이지에 등장한 그 후배.

누가 재가입을 받아줬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가입을 해서 열심히 하겠노라고 글을 남겨놓은 것을 읽었다.

1, 2학년도 아니고 졸업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탈퇴란 것이 의미가 있을까. 그저 관심을 가져달라는 어린아이처럼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내 친구는 말했다.

후배는, 자신을 다시 받아주니, 역시 소모임이 좋다고 했다.

 

안티팬들은 이게 웬 일인가 싶어도 어느 누구 먼저 묻는 이 없었다.

후배의 처지에서 선배의 흠을 잡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래서 내가 한소리 했다. 독설을 뿜기로 소문난 내가, 독설을 글로 뿜었다.

후배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 매우 흥분한 상태였다.

 

그 때부터 홈페이지는 분위기가 매우 엄해졌다.

나를 유난히(?) 따르는 후배 하나가 중재를 나섰다.

그 새벽에 나한테 전화를 해서는 좀 봐달라고 요청했지만,

나의 입장은 단호했다.

 

곧 그 후배의 답변이 홈페이지에 올라왔다.

나의 글이 논리적이지 않다며 반박했다.

자기를 내쫓으려는 듯한 글이지만 논리는 없다는 이야기였다.

학년이 높아졌다고 소모임에 소홀한 선배보다는

소모임 활동에 열심히 참여한 자신이 더 인정받아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자신의 탈퇴를 원하는 거라면 추호도 그러지 않겠노라 했다.

만약 선배들의 의견이 한데로 모아진다면 그 때는 수긍하겠다는 거다.

나는 초흥분 상태에 들어갔다.

곧 있으니 그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탈퇴한다, 가입했다... 그 글을 쓰면서도,

유일하게 신경 쓰이던 사람이 나였다고 한다.

그런데 자기한테 탈퇴하라고까지 하다니 섭섭하단다.

 

아무튼 그 날 이후,

어디선가 조용히 숨어지내던 다른 소모임 식구들에게는

이 사건이 반찬거리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나역시 반찬거리가 되었겠지.

 

그 사건이 있고, 며칠 후...

그 후배에게서 문자메시지가 몇 번 왔다.

자기가 잘못한 부분은 용서를 빌겠다고 한다.

우리 둘의 문제이니 어린아이처럼 그러지 말자며...

 

그날 핸드폰 배터리가 다 닳아있어서 문자는 나중에 받게 됐는데,

나는 답장을 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고 또 문자가 왔다.

탈퇴를 한단다.

 

후배의 그런 말바꿈이 술김이었는지 뭔지 참으로 모르겠다.

그런데 만나서 타이르고 싶은 생각은 없다. 진짜다.

혹시 그 후배가 만나서 이야기 하기를 원한다면

동기 한 명을 대변인으로 쓰려고 미리 섭외를 해 두었다.

사실 내가 말주변이 별로 없어서 논리적인 이야기를 잘 못 한다.

게다가 내가 99년도부터 계속 보아오건데, 그 후배는 나와는 다른 차원의 사람이다.

그저 나한테 욕지거리라도 안 해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그 후배가 소모임을 진짜 나갔는지 어쨌는지는 확인해보지 않았다.

나도 그 일로, "너도 똑같다. 둘 다 소모임에는 그만 나가라"는 이야기를

한 동기녀석한테 들었다. 그 일로 나에게 득이 된 건 크게 없는 셈이다.

그런데도 내가 그렇게 그 후배를 싫어했던 건 왜일까.

 

그 후배는 자신은 열심히 소모임 활동을 한다고 했다.

나는 연속성이 있는 조직을 좋아한다.

선배가 있고, 내가 있고, 후배가 있다.

그게 매년 잘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후배는 아이들과 열심히 놀기는 하는데,

어떤 선배 하나 후배들에게 소개해 주는 일이 없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이 후배 때문에 소모임에서 정을 떼는 다른 후배들이

계속 나타났다. 내 동기들 사이에서는 미꾸라지가 물 흐린다는 식으로 표현된다.

 

미꾸라지를 잡을 것인가 말 것인가.

잡아서 교화라도 시킬 것인가.

 

이제는 그 후배가 소모임을 하겠다고 하든

나가겠다고 하든 별로 신경 안 쓰려고 한다.

나도 그 후배한테 똑똑히 이야기 했던 게 바로 이거다.

 

" 무슨 일이 있다고 해서 조직을 빠져나가는 사람은,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는 것 " 이라며,

" 남고 싶다면 끝까지 남으라. " 고 여운을 주었다.

그런데 그 후배는 나한테 대단한 사람이라고 했다.

글 한 편으로 사람을 이렇게 매장시킬 수 있는 게 놀랍다고 했다.

 

아... 사실 이런 글은 쓸 필요는 없는데,

오늘 홈페이지에 뜬 다른 후배의 글 때문에 신경이 쓰인다.

 

대충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알겠다
이제 그만하자 네가 원하는대로 되가고 있자나
서로 더 얼굴 붉히기 전에 여기서 그만하자

 

그 후배의 동기이며, 역시 나와는 별로 통하는 구석이 없는 후배다.

제목도 딱히 없고, 누구에게 쓰는 글인지는 불분명하지만,

내용만으로도 나한테 하는 소리인 거 같다는 느낌이 온다.

전혀 엉뚱한 후배에게 '너'라고 표현되는 게 좀 기분은 나쁘지만,

그 쪽에서 봤을 땐, 선배로 인정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실 그 사건이 있을 때도, 그 동기들에게는 미안하기도 했다.

동기가 그렇게 쫓겨나간다면 자신의 처지가 매우 곤란할 테니...

 

내 동기들이랑 이야기하면 좋은데,

바빠서 만날 여건이 되지 않는다.

그냥 여기에 하소연이나 하고 싶어서 글 썼다.

아마 그냥 읽는 사람은 무슨 소린지 감을 못 잡을 거다.